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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에서 울릉도에서 고기잡는 우리나라 백성들을 금하게 해 줄 것을 요청하다.
계유년 봄에 울산(蔚山)의 고기잡이 40여 명이 울릉도(鬱陵島)에 배를 대었는데, 왜인의 배가 마침 이르러, 박어둔(朴於屯)·안용복(安龍福) 2인을 꾀어내 잡아서 가버렸다. 그 해 겨울에 대마도에서 정관 귤진중(橘眞重)으로 하여금 박어둔 등을 거느려 보내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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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의 충의위 이성창 등이 전정에 비를 세우기를 청하다.
경기전(慶基殿)의 충의위 이성창(李聖昌) 등이 상소하여 전정에 비를 세우기를 청하였다. 이성창은 시정에서 땅에 엎드렸던 자이다. 전주는 국조 시조의 본향이고 태조가 왜구를 정벌할 때에도 일찍이 이곳에 주절하였으므로 국가에서 주나라의 기(岐)와 한나라의 풍패(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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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 유생 이정저 등이 태조가 왜적을 추격하여 승첩한 동정에 비석을 세울 것을 청하다.
해주의 유생 이정저(李正著) 등이 상소하여 태조가 왜적을 추격하여 승첩한 곳인 해주의 동정에 비석을 세워 그 공렬을 칭송하게 할 것과 선조의 주필당과 원종의 잠저와 인조가 탄강하신 터에 편액을 내리고 궁을 건립하게 할 것을 청하였다. 임금이 이를 대신에게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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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돈령 이학수가 순조의 공렬을 찬양하며 선조대왕와 같이 조라고 이르기를 상소하다.
지돈녕(知敦寧) 이학수(李鶴秀)가 상소하였는데, 대략 말하기를……
“…… ≪대대례≫에 이르기를, ‘시호란 것은 행동에 대한 실적이다.’ 라 하였고, ≪예기≫에 이르기를, ‘그의 시호를 듣고서 그의 정치를 알 수 있다.’ 라고 하였으니, 순고의 행적을 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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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판서 양성지가 대마도 사람을 후대하도록 상서하다.
공조판서 양성지(梁誠之)가 상서하였는데, 그 상서는 이러하였다.
“신은 엎드려 보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영명하고 관고하신 자질로 선성의 부탁의 중함을 받아서 대보를 이어 등극하시어, 정성을 다하여 정치에 힘쓰셨으니, 먼저 방납을 혁파하여 우리 일국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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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전에 나아가 병정에 대해 의논하다.
상이 선정전에 나아가 대신들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들은 바에 의하면 순변사가 척간할 때에도 군기를 서로 옮겨다가 대신 점검받는 일이 있다고 하니, 그렇다면 군기가 반드시 다 허술할 것이다. 이제 불시에 척간하고자 하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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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홍언필이 남변에 성을 쌓는 일에 대해 의논드리다.
좌의정 홍언필(洪彦弼)이 의논드리기를,
“신은 본래 남변의 형세를 알지 못하고 또 성을 옮겨 물려쌓는 등의 일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다만 전에 들은 것을 의거하여 지금의 일을 참작해 보면 남쪽의 변장이 아뢴 것을 경솔하게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당초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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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은 국왕의 사신 이외는 일체 거절토록하고 가덕도에 진을 쌓도록하다.
윤은보 등이 회계하기를, ……
윤은보·윤인경·이기·권벌·조윤손·유인숙·정순붕·황헌·임권·장언량·최보한이 의논드리기를,
“국가에서 왜인(倭人)들 대우를 지나치게 후하게 하고 예에 맞게 절제하지 않으므로 점점 오만 방자한 마음이 생겨 한없이 구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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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서 왜인들을 거절하는 문제를 논하다.
조정에 나아갔다. ……
특진관 상진(尙震)이 아뢰기를,
“왜노를 거절하기로 이미 조정 의논이 정해졌습니다마는, 신의 생각을 계달해 보겠습니다. 왜노들이 오가면 한갓 각 고을들만 폐해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도해량(渡海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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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의 삼포 거주가 불가함에 대해 의논하다.
주강에 나아갔다. 시강관 윤지형(尹止衡)이 아뢰기를,
“전조말엽에 왜구들이 크게 치성하여 도성까지 들어오게 되므로 민생들이 모두 어육이 되었으니, 최영(崔瑩)과 우리 태조(太祖)의 힘이 아니었다면 나라 사세가 거의 멸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