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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임진왜란 당시 석공의 은혜에 관해 전교하다.
차대가 있었다. 장용영(壯勇營)장용영(壯勇營)조선 후기 국왕의 호위를 맡아보던 숙위소(宿衛所)를 폐지하고 새로운 금위체제(禁衛體制)에 따라 조직·개편한 국왕 호위군대.과 어영청(御營廳)어영청(御營廳)임진왜란 뒤 5위(五衛)에 대체되어 설치된 3군문(三軍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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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문중 의정부에서 유구국의 내조한 것을 하례하다는 것이 있었다.
고령군 신숙주와 영성군 최항·창녕군 조석문·우의정 윤자운·지사 이변(李邊)·좌찬성 김국광(金國光)·예조판서 임원준(任元濬)·무령군 유자광(柳子光)·행첨지사 김수녕(金壽寧)·형조참판 이영은(李永垠)·한성좌윤 이극돈(李克墩) 등에게 명하여 문신과 성균관 유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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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왕 원의정이 보낸 심원동당 등이 내빙하다.
일본국왕 원의정(源義政)이 보낸 심원동당(心苑東堂) 등이 내빙(來聘)하였다. 그 글에 이르기를,
“조선국왕 전하에게서 온 글의 뜻은 지혜가 높고 밝아, 해가 비치어 임하는 것 같고 봄이 따스하게 기르는 것 같아서, ‘크게 뚜렷한 저 은하수가 하늘에 빛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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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에 관한 이서장 등의 상소문.
사헌부대사헌 이서장(李恕長) 등이 상소하기를,
“…… 원종(元宗)이 친조함에 이르러서 세자를 상주하게 된 뒤에야 차차 안정이 되었습니다. 또 91년이 되어 왜인이 침구하기 시작하였고, 9년 만에 홍건적(紅巾賊)이 크게 들어오매 ……
1. 국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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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에 거주하는 왜인의 수가 늘어남을 걱정하다.
영의정 정창손(鄭昌孫)·무송부원군 윤자운(尹子雲)·좌참찬 서거정(徐居正)을 문과중시의 독권관으로 삼고, 임금이 인정전에 나아가서 책문을 발표하기를,
“제왕의 도는 오랑캐를 방어하고 백성들을 평안히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한나라에서는 궁병독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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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현종의 고사를 들며 왜환을 염려하다.
석강(夕講)에 나아갔다.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강하다가, ‘당나라 현종이 양신긍(楊愼矜)으로 대부(大府)의 출납을 맡게 하니, 신긍이 아뢰기를, 「여러 고을에서 바친 포백이 찌들어서 파손된 것이 있으니, 본 고을에 돌려보내어 절고전(折估錢)을 받고 저자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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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이 일본과의 강화와 병란에 대비할 것 등에 대한 상소를 올리다.
홍문관 전한 이황(李滉)이 상소하기를,
“신은 생각하건대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에 이적은 금수라고 합니다. 이적도 사람이지만 이를 금수에 비유하는 것이 진실로 심한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의를 몰라 군신상하의 분별이 없어서 그 삶이 어리석고 무식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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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기로 파천하는 계책에 대해 의논하라고 전교하다.
비망기로 정원에 전교하였다.
“근일 기후가 불편하여 밖에 나가기 어려우므로 친히 의논하지 못한다. 전일 계사한 강화(江華)에 관한 일은 진정 그 의도를 알겠다. 다만 만일에 형세가 어려워진다면 강화에서 또 서로로 간다고 하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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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칙사 유인원 ․ 웅진도독 부여융과 함께 웅진 취리산에서 화친을 맹서하다.
왕이 칙사 유인원(劉仁願)․웅진도독 부여융(扶餘隆)과 함께 웅진 취리산(就利山)에서 화친을 맹약하였다. 이보다 앞서, 백제의 부여장(扶餘璋)이 고구려와 화친을 맺으면서부터 자주 우리의 국토를 침범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는 연이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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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
설총(薛聰)은 자가 총지(聰智)이고, 조부는 나마담날(奈麻談捺)이며 부친은 원효(元曉)이다. 원효는 처음에 중이 되어 불서에 통달하였으나 얼마 후에 속인으로 되돌아와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불렀다. 총은 성질이 총명하고 예리하며, 나면서부터 도술을 알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