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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호조에 백성을 구제하고 경작하게 할 방법을 강구하라고 이르다.
상이 이르기를,
“병란에 혈육을 잃은 나머지 겨우 살아남은 백성들이 장차 스스로 살아날 길이 없어 떠돌아다니며 주리고 곤고한 것이 팔도가 똑같이 그러하지만 경기·경상·함경 등의 도가 탕진한 것이 더욱 심하다. 이제 1월이 거의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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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가 대가의 노정을 계산하여 아뢰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아뢰기를,
“경략의 분부로 인하여 대가가 속히 전진할 수 없음은 전에 이미 계달하였습니다. 다만 노정에 관하여는 미리 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초 해구진(海九津)이 불편하다 하여 자산(慈山) · 강동(江東) · 삼등(三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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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략에게 왜노에게 침탈당한 도와 침범당하지 않는 도에 대해 회자하다.
경략이 이자하였는데 대략에,
“본국의 팔도 중에 어느 도 어느 읍은 모두 왜노가 점거하였고, 어느 도는 침범 당하였으며, 어느 도는 아직 침범 받지 않았고, 어느 곳 어느 도는 전혀 지경에 들어오지 않았는가 하는 사실을 세세히 갖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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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사 조호익의 의병 활동에 대해 비변사가 보고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전 부사 조호익(曺好益)이 강동 등처의 정예병 수백여 명을 거느리고 왜적을 토벌하는 데 종사하려 한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이전부터 의기가 소문났었는데 지금 또 의병을 모집하였으니 지극히 가상합니다. 속히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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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 조호익이 적을 토벌하고 강동에 주둔하다.
유생 조호익(曺好益)이 군사를 모집하여 적을 토벌하고 강동(江東)에 주둔하였다. 호익은 창원 사람으로 지조와 덕행이 있었는데, 남의 무함을 당하여 군적에 관련된 사건에 연좌되어 전가가 강동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그곳에서 생도들을 가르쳤는데, 향리에서 그를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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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가 성천에 머물다.
왕세자가 도로 성천(成川)에 머물렀다. 세자가 이천(伊川)에 머물자 적이 듣고는 군사를 진격시켜 압박해 옴으로 밤에 그곳을 떠나 산골 길을 따라 도로 관서로 들어가 강동(江東)에 이르렀다. 그 뒤 곧 이어 성천으로 행차하였다가 또 영변(寧邊)으로 향했는데,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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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판서 양성지가 대마도 사람을 후대하도록 상서하다.
공조판서 양성지(梁誠之)가 상서하였는데, 그 상서는 이러하였다.
“신은 엎드려 보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영명하고 관고하신 자질로 선성의 부탁의 중함을 받아서 대보를 이어 등극하시어, 정성을 다하여 정치에 힘쓰셨으니, 먼저 방납을 혁파하여 우리 일국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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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산보다 물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제시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명나라의 경략과 제공이 우리나라를 위하여 험한 곳에 관을 설치하여 만세토록 장구한 계책을 세워 주려는 고마운 뜻에 우리나라는 끝없이 감격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세는 중국과 다릅니다. 중국에 관을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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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중추부사 윤두수 등이 대가의 파천 계책에 대해 아뢰다.
판중추부사 윤두수(尹斗壽)·좌의정 김응남(金應南)·지중추부사정탁(鄭琢)·우의정 이원익(李元翼) 등이 청대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오시 초에 별전에 나아가 네 대신을 인견하였는데, 승지 허성(許筬)이 입시하였다. 김응남이 아뢰기를,
“신들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