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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민이 심유경의 강화책에 대해 이여송이 화를 낸 일 등을 보고하다.
집의 이호민(李好閔)이 아뢰었다.
“신이 19일에 제독을 보았던 곡절은 이미 치계하였습니다. 20일 새벽에 신이 군마와 양초(粮草)의 수효를 적어 가지고 갔더니, 이여백(李如栢)이 표정로(表廷老)를 불러서 사적으로 말하기를 ‘심유경이 많은 은냥(銀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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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 등을 인견하고 괄군하는 일, 각도 군사를 체찰하는 일을 논의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행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우찬성 최황(崔滉), 부제학 김응남(金應南),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 서천군(西川君) 정곤수(鄭崐壽), 행 이조참판 구사맹(具思孟), 대사헌 이덕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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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의 동향과 출병 시기 등에 대해 이산보가 올린 보고문.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가 치계하였다.
“신이 8일 배사한 후에 중강(中江)을 건넜는데 중국 군졸이 관문을 닫고 완강하게 거절하면서 말하기를 ‘누구든지 마음대로 지나가지 못한다. 이는 바로 금약이다. 동참장(佟參將)이 송시랑(宋侍郞)을 영접하는 일로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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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일이 왜적이 강릉과 태능을 도굴하려다 실패했다고 보고하다.
김천일이 치계하였다.
“12월 16일에 적이 기병과 보병 50여 명을 거느리고 또 성중의 주민 50명을 뽑아 강릉(康陵)과 태릉(泰陵)에 가서 능을 팠지만 능 위에 회(灰)가 단단하게 막혀서 깨뜨리지 못하고 날이 저물어 파하고 되돌아왔으며, 또 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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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부원군 윤근수가 심유격이 준 병부의 공문에 대해 치계하다.
해평부원군 윤근수(尹根壽)가 치계하였다.
“심유격(沈遊擊)이 병부의 공문 2통을 꺼내 통사에게 주었는데, 그 공문은 왜의 진영에서 오늘 아침 당도했습니다. 그 하나는, 병부에서 책봉사가 조선국도로 직행할 것을 감안, 심유경(沈惟敬) 등의 회보를 기다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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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군문표하 도지휘사사 장홍유이 애적을 신속히 몰아낼 것을 품첩을 올리다.
의주부윤 황진(黃璡)의 장계는 총독군문표하도지휘사사(總督軍門標下都指揮使司) 장홍유(張鴻儒)의 품첩을 올려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장홍유의 첩문은 다음과 같다.
“총독군문요섭요해등처어왜제조도지휘사사(總督軍門繞攝遼海等處禦倭提調都指揮司使) 장홍유는 돈수재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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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에게 보내는 봉서를 승정원에서 곧바로 뜯자 색승지를 체차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이번에 선래통사가 가지고 온 중국 사신 앞으로 전하는 봉서【*】를 정원이 살피지 아니하고 곧바로 뜯었습니다. 중국 사신이 만일 이를 알게 된다면 어찌 지레 뜯어본 것
이라 의심하여 성내고 괴이하게 여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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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제읍 훈도의 체임에 대하여 아뢰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몽고(蒙古) · 왜(倭) · 여진(女眞)의 삼학훈도(三學訓導)를 한학훈도(漢學訓導)의 예에 의거하여 30삭(朔)에 서로 체직하게 하고, 또 황해도 황주(黃州), 평안도 평양(平壤) · 의주(義州)의 역학훈도(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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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
박제상(朴堤上)【혹은 모말(毛末)이라고도 한다.】은 시조 혁거세의 후손이요,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의 5세 손이고, 조부는 아도(阿道) 갈문왕(葛文王)이며, 아버지는 물품(勿品) 파진찬(波珍湌)이었다. 제상은 벼슬길에 나아가 삽량주간(歃良州干)삽량주현재의 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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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방
조위(曹魏)조위(曹魏)삼국시대의 위(魏)나라로 남북조 시대의 후위(後魏)와 구별하기 위해 건국자인 조(曹)씨에서 일컬음. 때에 비로소 남대방군(南帶方郡)【지금 남원부(南原府)】을 두었으므로 남대방이라 하였다. 대방의 남쪽 바닷가 천리이니 한해(瀚海)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