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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 좌병사 김응서가 치계하다.
6389. 경상 좌병사 김응서가 치계하다.
경상좌병사 김응서(金應瑞)가 치계하였다.
“흥양(興陽) 출신 김경립(金慶立) 등 10명이 왜적들 속에서 작은 배를 훔쳐 타고 장기(長鬐) 지경에 들어와 정박하였습니다. 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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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끌려갔다 송환된 사람들이 일본과의 강화와 포로 송환 문제에 대해 아뢰다.
6700. 일본에 끌려갔다 송환된 사람들이 일본과의 강화와 포로 송환 문제에 대해 아뢰다.
울산(蔚山)의 정병 장번석(張番石) 등 57명이 일본에서 나왔다. 번석 등이 나올 적에 왜적 평조신(平調信)에게 요청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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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백성들이 강화와 포로 쇄환 문제로 글을 올리다.
6701.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백성들이 강화와 포로 쇄환 문제로 글을 올리다.
표로되었던 백성들이 올린 글은 다음과 같다.
“진실로 황송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천조의 대장군문대하(大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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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도감에서 중군 손방희와 강화와 국방 문제를 논의한 결과를 아뢰다.
6705. 경리도감에서 중군 손방희와 강화와 국방 문제를 논의한 결과를 아뢰다.
경리도감(經理都監)이 아뢰었다.
“오늘 아침 신(臣) 강신(姜紳)이【이때 경리(經理)의 접반부사(接伴副使)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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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들과 중국군의 주둔을 요청하는데 따른 제반 문제와 일본과의 강화 문제 등을 논의하다.
상이 시어소(時御所)의 별전에 나아가 영의정 이산해(李山海), 완성부원군 이헌국(李憲国), 경림군 김명원(金命元), 지사(知事) 신점(申點), 예조판서 심희수(沈喜寿), 병조판서 홍여순(洪汝諄), 호조판서 신잡(申磼), 이조판서 임국로(任国老), 행호군(行護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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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왜적의 서계에 답서를 보내는 일로 아뢰다.
6739. 예조에서 왜적의 서계에 답서를 보내는 일로 아뢰다.
예조가 아뢰기를,
“비변사의 계사로 인하여 적추에게 보내는 답서의 일을 예조로 하여금 속히 고쳐 마련하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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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평의지 등이 보낸 글에 대해 대신들이 모여 회답을 정하자고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평의지(平義智) · 평조신(平調信) · 정성(正成) 등의 글을 보건대, 바로 예조에 보낸 것으로서 강화하자는 청을 거듭 밝힌 것입니다. 글 가운데 위협하는 뜻이 있기는 하지만 크게 패악한 말은 별로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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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품 이상 대신들이 왜적에 대해 의논한 바를 좌부승지 민선이 비변사의 말로 아뢰다.
2품 이상을 명초하여 적에 대해 의논한 결과를 좌부승지 민선(閔善)이 비변사의 말로 아뢰었다.
“‘적정의 허실과 흉모의 여부를 알아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강화를 하자고 온다니 그에 대한 대책을 미리 의논하여 말을 만들어 놓았다가 적의 글이 오는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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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체찰사 이덕형이 왜적의 일에 대처할 방안에 대해 아뢰다.
전에 내족 남충원(南忠元)이 남쪽 지방의 수령으로 나갔다가 정유재란 때 적의 포로가 되었었다. 그런데 이때에 이르러 평조신(平調信)·정성(正成)·평의지(平義智) 등이 사신을 보내면서 남충원 및 포로된 남녀 2백여 명을 함께 보내와 예조에 글을 보내 강화를 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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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강화를 청한 문제에 대해 이헌국 ․ 최흥원 ․ 김명원 등이 의논한 바를 아뢰다.
왜적이 강화를 청한 문제로 대신 및 2품 이상의 관원이 의논드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헌국(李憲國)은 의논드리기를,
“난리 뒤에 강화를 청한 것은 일본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마도주 평의지(平義智) 및 평조신(平調信) 등이 수백년 이래 우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