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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표류인 김비의 등으로부터 유구국 풍속과 일본국 사정을 듣다.
제주도 표류인 김비의(金非衣)·강무(姜茂)·이정(李正) 등 세 사람이 유구국으로부터 돌아왔는데, 지나온바 여러 섬의 풍속을 말하는 것이 매우 기이하므로, 임금이 홍문관에 명하여 그 말을 써서 아뢰라고 하였다. 그 말에 이르기를,
“우리들이 정유년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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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사은사 보내는 일에 대해 예조와 의논토록 전교하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지금 자문을 등서한 초를 보니 ‘정조진하(正朝進賀)를 동지 때에 이자한다.’ 하였고, 또 전일 사은사를 보내고자 하였는데 지금 칙서등황(勅書謄黃)을 보니 보낼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에 대하여 예조에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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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가 대마도 태수 평조신 종성장의 서계를 아뢰다.
예조가 아뢰었다.
“대마도 왜인에게 향연을 베풀 때 작은 통을 가져다 바쳤는데 가고 난 다음 열어보니, 서계 아래에 또 도서(圖書) 3장이 있었습니다. 그 뜻을 알지 못하여 통사로 하여금 관소(館所)에 물어보게 하니, 이것은 강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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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병사 한기의 서장에 대하여 예조가 의계토록 하다.
전라도 병사【한기(韓琦)】와 수사【민응서(閔應瑞)】의 계본을 정원에 내리고 일렀다.
“이제 당인(唐人)의 글 사연【일본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너희 조선국에 있을 때에 태수가 우리 명나라 사람 42인을 강도처럼 지목하였으니, 너희가 거두어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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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림을 황해도에 있는 왜인이 생포되기를 기다려 신문하기로 하다.
김말문(金末文)이 위관의 뜻으로 아뢰기를,
“다시 중림(中林)을 추문해보니 어긋난 단서가 없어 별로 추문할 만한 일이 없습니다. 황해도에 있는 왜인 가운데 혹 포획되었거나 혹 개유하는 말을 듣고 순순히 항복해 온 자가 있으면 참고로 신문하여 귀일점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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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략접반사 윤근수가 경략이 병부에 올린 게첩을 보고하다.
경략접반사 윤근수(尹根壽)가 치계하기를,
“이 달 26일에 경략이 대청에 앉아서 신들에게 이르기를 ‘조령(鳥嶺) 등 세 곳에 관을 설치하여 지키면 나는 오유충(吳惟忠)·낙상지(駱尙志)·심무(沈茂)의 군사를 주둔시킬 것이다. 내 처음 뜻은 본래 이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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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귀를 대마도에 보내어 상만호의 처벌을 청하다.
전 사재소감(司宰少監) 박인귀(朴仁貴)를 보내어 일본 대마도에 통서(通書)하게 하였다. 그 글에 이러하였다.
“조선국(朝鮮國)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 조준(趙浚) 등은 일본국 대마도수호(守護) 이대경(李大卿) 족하(足下)에게 서신을 부치노라. 본국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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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문원이 유구국 세자의 원자와 비교하여 회자에 쓰는 문서양식을 아뢰다.
승문원이 아뢰기를,
“유구국 세자의 원자(元咨)에는 자신이 그의 이름을 썼습니다마는 우리나라의 회자에 원자대로 이름을 쓰는 것은 미안한 듯하니, 그 ‘영(寧)’ 자를 쓰지 않고 그 자리를 비워 두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우자(右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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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 방어에 필요한 취량 ․ 액향에 관한 중국 호부의 제본이 오다.
호부의 제본에,
“성지를 받들고 동순(東巡)하여 삼가 왜적 방어에 관한 기무를 진달하는 일입니다. 본부의 제본과 관련된 산동청리사(山東淸吏司)의 안정(案呈)을 받았는데, 본부의 요청으로 호과가 초출하여 본부를 경유, 산동청리사에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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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국
신라의 국토 경계에 대하여는 옛날 기록들의 내용이 동일하지 않다. 두우(杜佑)의 『통전(通典)통전(通典)당(唐)나라의 재상(宰相) 두우(杜佑:735~812)가 편찬한 제도사(制度史)이다. 766년에 착수하여 30여 년에 걸쳐 초고(初稿)가 완성되고, 그 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