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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김의중 등이 군사를 통솔할 자가 없으니 제주 향시의 설치를 청하다.
제주 자제 부사맹 김의중(金義中)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러하다.
“본주는 적침을 받을 요충 지역이 매우 많은데, 3읍에 방호하는 곳은 매우 적습니다. 목관(牧官) 동쪽에는 7~8포가 있고, 서쪽에는 17포가 있고, 정의(旌義)·대정(大靜)에 각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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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사 장임이 방어절목 여덟 가지를 들어서 치계하니 방어청에 내리다.
제주목사(濟州牧使) 장임(張琳)이 방어절목을 조목조목 들어서 치계하기를,
“1. 본주의 건입포(巾入浦) 등 18포와 정의현(旌義縣)·천미포(川尾浦) 등 10포와 대정현(大靜縣)·모슬포(毛瑟浦) 등 11포는 포구가 넓지 않아서 적선이 의지해 정박하기가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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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사 심낙수가 제주도는 임진왜란 때에 충돌이 없었다고 상소하다.
제주목사 심낙수(沈樂洙)가 상소하기를,
“생각건대 제주도는 호남의 방벽이 되며 말이 생산되고 귤을 바치는 곳으로서 진실로 이롭게 쓰이는 곳이지만 이보다 더 중대한 것이 있습니다. 일본의 대판과 강호, 중국의 복건과 강남 사이에 끼어 있는 섬이므로 동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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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 최영(崔瑩)은 풍채가 헌걸차고 체력이 남보다 뛰어 났다. 처음에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의 휘하에 있으면서 누차 왜적을 사로잡아 용맹을 떨쳤으므로 달적(達赤)으로 채용되었다. …… 공민왕 6년에 외직으로 나가서 서해(西海), 평양(平壤), 이성(泥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