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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승지 유근이 동궁이 있는 성천에 다녀와 아뢰다.
도승지 유근(柳根)이 아뢰었다.
“신이 이달 3일 성천(成川)의 온정(溫井)에 도착하였고 4일 이른 아침에 나아가서 예조의 의주(儀註)대로 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예를 끝마치고 동궁이 다례를 거행하려는데 신이 분예조(分禮曹)가 의논하여 정한 의주를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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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관 유희서를 인견하고 심유경이 강화를 청하는 일, 평양 공격 등을 논의하다.
도원수의 종사관 유희서(柳熙緖)가 비밀히 계달하는 일로 오니 즉시 인견하였는데, 동부승지 심희수(沈喜壽)가 입시하였다. 상이 유희서에게 이르기를,
“원수가 무슨 일 때문에 그대를 보냈는가?”
하니, 유희서가 대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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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수복 전투의 전모를 기록하다.
처음에 제독 이여송(李如松)이 군사 3만명을 거느리고 부총병 양원(楊元)을 중협대장으로, 부총병 이여백(李如栢)을 좌익대장으로, 부총병 장세작(張世爵)을 우익대장으로 삼고, 부총병 임자강(任自强)․조승훈(祖承勳)․손수렴(孫守廉)․사대수(査大受)와참장이여매(李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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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에 있는 병마의 숫자를 헤아려 개진하다.
답보하면서 헤아려 개진한 것은 다음과 같다.
경기도 강화부(江華府)에 주차(駐箚)한 전라도절도사 최원(崔遠)의 군사 4,000명, 경기도순찰사 권징(權徵)의 군사 400명, 창의사 김천일(金千鎰)의 군사 3,000명, 의병장 우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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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군량을 조달하라는 명을 어긴 김응서를 삭탈하고 결장하라고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었다.
“지금 이덕형(李德馨)의 장계를 보니 김응서(金應瑞)는 그 군사를 모두 거느리고 군량을 운반하라는 것으로 이미 분부를 받았는데도 지금까지 1석도 도착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여러 장수들이 명을 따르지 않음이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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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도원수 김명원으로 하여금 친병을 이끌고 적을 소탕하게 하라고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었다.
“이제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의 장계에 의하면 ‘이제독은 벽제(碧蹄)에 도착하여 두 파총(把摠)을 잃게 되자 동파(東坡)에 퇴진하여 후속 부대가 이르기를 기다린다.’ 고 하는데, 우리나라 장수중에 수행하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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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왜적을 대응하기 위해 이일이나 김응서를 방어사로 차임하라고 전교하다.
상이 정원에 하교하였다.
“북적은 사람의 배후에 있는 것 같아서 때맞추어 소탕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비변사는 오직 물러갈 날짜만 기다리니, 조치하여 책응하는 것이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심병이 있는 사람으로 매우 민망하게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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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최흥원 등을 인견하고 평양으로 진주하는 일, 군량 모속 등을 논의하다.
영의정 최흥원(崔興源), 겸호조판서 홍성민(洪聖民), 아천군 이증(李增),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 행이조참판 구사맹(具思孟), 행호조참판 윤자신(尹自新), 우참찬 성혼(成渾), 형조참판 이희득(李希得), 행이조참의 심충겸(沈忠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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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를 인견하고 개성의 군량, 경성 수복방법 등을 논의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평양으로부터 돌아오니 상이 인견하였다. 참찬관 심우승(沈友勝), 가주서 김흥국(金興國), 기사관 조유한(趙維韓)·신영(申泳)이 입시하였다. 윤두수가 아뢰기를,
“신이 평양에 들어가니 이여백(李如栢)이 마침 제독과 이야기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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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이 양호에서 싸움이 있을 것을 대비해 해산한 군사를 모아 보내기를 청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북쪽의 적이 벌써 서울의 적과 합세를 하였으니 만약 도망쳐 돌아가지 않는다면 장차 양호에서 충돌이 있을 것이므로 모든 사람들이 이 때문에 걱정합니다. 전날 맹장과 예사를 보내라고 청하였으나 비변사는 포수가 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