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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를 인견하고 이제독의 철군, 경략과 제독의 갈등, 왜적 추격 등을 논의하다.
판중추부사 윤근수(尹根壽)가 경략원접사(經略遠接使)로서 안주(安州)에서 왔다. 상이 명하여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은 무슨 일로 왔는가?”
하니, 윤근수가 아뢰기를,
“오늘 아침 패문에 경략이 분부한 일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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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 등을 인견하고 중국남병의 주둔, 경성 이어 등을 논의하다.
상이 비변사의 당상관인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좌찬성 정탁(鄭琢), 서천군 정곤수(鄭崑壽), 지중추부사 정창연(鄭昌衍), 창산군 성수익(成壽益), 병조참판 심충겸(沈忠謙)을 인견하였는데 좌승지 홍진(洪進), 홍문관교리 박홍로(朴弘老), 지평 이수광(李睟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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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도수사 원균이 왜적과 수륙 합동전투를 할 일을 치계하다.
경상우도수사 원균(元均)이 치계 하였다.
“신은 지금 호남의 주사(舟師)와 더불어 이미 바다로 나왔습니다. 웅천 · 창원의 왜적은 아직도 여전히 웅거하여 있고, 웅포의 왜적은 차츰 늘어나서 전보다 배나 성한데 험지를 점거하여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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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외를 접견하고 관의 설치, 중국군의 주둔 등을 논의하다.
상이 백상루(百祥樓)에 가서 유원외(劉員外)를 접견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대인이 우리나라를 위해 멀리까지 와서 수고합니다. 기전(畿甸) 근처가 이미 분탕되고 패잔한 나머지 소홀히 대한 일이 있을 것이니 더욱 미안합니다.”
하니, 원외가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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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략에게 왜노에게 침탈당한 도와 침범당하지 않는 도에 대해 회자하다.
경략이 이자하였는데 대략에,
“본국의 팔도 중에 어느 도 어느 읍은 모두 왜노가 점거하였고, 어느 도는 침범 당하였으며, 어느 도는 아직 침범 받지 않았고, 어느 곳 어느 도는 전혀 지경에 들어오지 않았는가 하는 사실을 세세히 갖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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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도 관찰사 한효순이 왜적들 대부분이 귀환했다고 치계하다.
경상좌도관찰사 한효순(韓孝純)이 치계 하였다.
“수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왜적 병력이 밀양(密陽)으로부터 내려와 밤중에 동래(東萊) 지방으로 내려갔고, 양산(梁山)에 주둔하고 있는 남은 적병도 전과 같이 가득 차 있으며, 왜선도 헤아릴 수 없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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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관찰사 한효순이 당교 ․ 상주 ․ 선산 등지의 왜적이 물러갔다고 치계하다.
경상도관찰사 한효순(韓孝純)이 치계 하였다.
“본 도내에서 문경군 당교(唐橋)의 왜적은 4월 28일에 물러갔고, 상주(尙州)의 적은 5월 10~11일에, 선산(善山)의 적은 12일에, 인동(仁同)의 적은 13일에, 대구(大丘) · 청도(淸道)의 적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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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부상서 석성에게 왜적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으므로 다시 군사를 보내 줄 것을 청하는 편지를 보내다.
병부상서 석성(石星)에게 게첩하였다.
“우리나라의 군신이 성천자의 지극한 은혜를 받아 꺼진 불이 다시 타오르듯 마른 뼈에 살이 붙듯이 재생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덕화를 받았습니다만 보답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제 흉적이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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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훈련과 군량 공급을 원활히 할 것을 명하자, 선전관 유몽룡이 경상도 병사의 피폐한 상황을 보고하다.
정원에 전교하기를,
“동궁 문안관 황신(黃愼)에게, 무군사에서 훈련시켜 성취된 병졸의 수효를 묻도록 하라. 또 호조판서에게 군량을 수송하도록 했는데 영남의 우리 군사가 많이 굶어 죽었다고 하니 어찌하여 군량을 대어주지 않았는지를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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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의 상황을 중국 장수 주홍모에게 알리다.
상이 승문원에 명하여 근일의 적정을 써서 유격 주홍모(周弘謨)에게 보이라고 하였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금년 정월 28일 별장 한명련(韓明璉)이 비직에게 보내온 정문에 의하면 ‘정예를 영솔하고 도로 가에 매복하여 있다가 적병 1명을 생포하여 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