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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수복후에 여러 장수가 경성으로 모인 일과 행주산성의 대첩에 대해 기록하다.
처음에 평양이 회복되자 여러 장수들이 많이 경성으로 모여들었다. 중국군이 개성부에 진주하자 우리나라 장수들은 차례로 전진시켜 함께 기각의 형세를 이루고 있었다. 전라도순찰사 권율(權慄)은 그의 군사 4천명을 반으로 갈라 절도사 선거이(宣居怡)로 하여금 거느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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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경성의 포위 상황을 아뢰며 왜적이 합세하기 전에 토벌하자고 청하다.
도체찰사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이 치계 하였다.
“경성에 있는 적의 무리가 12일의 행주 전투로 인하여 사망자가 매우 많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도망해 돌아온 사람들의 말이 모두 같습니다. 15일에 충청수사 정걸(丁傑)이 수군을 이끌고 곧바로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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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이 강화에 머물면서 적을 토벌하지 않은 최원을 파직하기를 청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훈련도정(諫鍊都正) 최원(崔遠)은 전에 전라병사로 있을 때에 군사를 이끌고 오랫동안 강화(江華)에 머물면서 한 해가 지나도록 물러나 움츠리고 있으면서 적을 토벌할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김포(金浦)의 싸움에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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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사 이봉정 등을 독성진에 보내 시재하다.
중사 이봉정(李奉貞)과 주서 이덕온(李德溫)을 보내어 독성진(禿城陳)【수원 동쪽 10리에 있다.】에서 시재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독성이 아무리 작지만 이 역시 하나의 군영이니 왕명을 받들어 군사를 위로하고 겸하여 시재까지 하여 상벌을 시행하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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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울진 등의 유리한 지형을 이용케 할 것을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무릇 적과 더불어 진루를 대치하여 공격을 하거나 혹은 수비를 함에 있어서는 먼저 유리한 지형을 차지함에 달려 있으니, 그런 곳은 바로 적이 꼭 경유할 곳이며 우리가 반드시 빼앗아야 할 지역인 것입니다. 그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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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경기도의 수성과 군사 훈련에 대해 아뢰다 .
비변사가 아뢰기를,
“오늘날 중외의 형세가 진실로 위박합니다. 그러나 이 기회에 촌각의 여력도 남기지 않고 급급히 조치한다면 앞으로 위급함이 있더라도 오히려 만분의 일이라도 지탱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지체하여 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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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왜적 방비를 위해 거북선을 더 만들 것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 왜적의 흉모는 헤아릴 수 없으니 강사준(姜士俊)이 보고한 바를 기다리지 아니하고도 명년의 일이 이미 근심스럽습니다. 대저 적을 막고 나라를 보전하는 방도는 마땅히 먼저 대계를 정해야 하고 대계가 정해지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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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대신 및 비변사 유사 당상을 명초하여 인견하다.
사시에 상이 대신 및 비변사 유사 당상을 명초하여 인견하였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이르기를,
“주문사(奏聞使)를 차견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일본에 사신을 보내는 것이 대지(大旨)이다. 중국이 간세한 무리에게 기만을 당해서 성지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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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들이 황정욱의 일과 무과 출신자를 선발하는 것 등을 건의하다.
묘시 정각에 상이 별전에 나아갔다. …… 장령 유몽인(柳夢寅), 헌납 이필형(李必亨)이 아뢰기를,
“신들이 황정욱(黃廷彧)의 죄상을 논계한 지가 여러 날이 되었는데도 전하께서 아득히 못 들은 척하십니다. 황정욱의 죄상은 상께서도 한없이 흉악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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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과 비변사 유사당상을 인견하고 국내외 정세와 대책을 의논하다.
오시에 대신과 비변사의 유사당상을 편전에서 인견하였다. 영의정 유성룡, 판중추부사 윤두수(尹斗壽), 좌의정 김응남(金應南), 형조판서 김명원(金命元),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동지중추부사 유영경(柳永慶), 이조 참판 이정형(李廷馨), 행대호군 노직(盧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