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의정 윤두수를 불러 왜군의 동태 ․ 군사 징병 방법 ․ 농사 상황 등을 물어보다.
상이 편전에 나아가 좌의정 윤두수(尹斗壽)를 인견하였는데 동부승지 윤승길(尹承吉), 주서 홍준(洪遵), 봉교 김용(金涌), 대교 심흔(沈炘)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좌상이 국사 때문에 내려가서 혼자 노고하고 있어 미안스러운 마음 그지없다.” …
-
좌부승지 이덕열이 유총병이 보공을 허락하지 않으면 압록강을 경계로 지키겠다는 말을 아뢰다.
좌부승지 이덕열(李德悅)이 유총병(劉摠兵)에게 연향하는 일로 호남에 갔다가 돌아와 서계하였다.
“6월 26일 아침에 신이 접반사 김찬(金瓚), 관찰사 홍세공(洪世恭)과 총병을 진알하였더니 즉시 들어오라고 하고 자리를 내주며 차를 대접하였습니다. 신에게 …
-
도원수 권율이 수륙전을 독려하기 위한 치계를 올리다.
도원수 권율(權慄)이 치계하기를,
“수륙전을 직접 독려하는 일로 9월 22일, 신은 사천(泗川)·고성(固城)으로 떠나 그믐 전에 거제에서 거사할 계획입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
영의정 유성룡 등을 인견하여 윤두수의 논핵 ․ 허욱의 장계 등을 논의하다.
오시에 상이 별전에 나아가 인견하였는데,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행판돈녕부사 정곤수(鄭崑壽), 우찬성 최황(崔滉), 좌참찬 한준(韓準), 호조판서 김수(金睟), 형조판서 신점(申點), 행판결사 윤선각(尹先覺), 호조참판 성영(成泳), 병조참판 한효순(韓孝純)…
-
영의정 등을 인견하여 일본 ․ 중국의 외교 문서의 처리 등의 일을 논의하다.
오시에 상이 편전에 나아가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행판돈녕부사 정곤수(鄭崐壽), 좌찬성 최황(崔滉), 호조판서 김수(金睟), 형조판서 신점(申點), 행판결사 윤선각(尹先覺), 병조판서 한효순(韓孝純), 호조참판 성영(成泳)을 인견하였다. 행도승지 강신(姜紳)…
-
영의정 유성룡이 경상도에서 응당 행해야 할 일에 대해 차자를 올리다.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경상도에서 응당 행해야 할 알맞은 일에 대해 올린 차자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자고로 병란 때에는 먼저 영책을 설치하여 요새지로 삼아서 군사와 백성, 그리고 노약자들이 그곳에 의지하여 몸을 보전하게 하고, 공물이건 사물이건 모…
-
경상우도 관찰사 서성이 왜적의 약탈에 대해 치계하다.
경상우도 관찰사 서성(徐渻)이 치계하기를,
“진주판관 박사제(朴思齊)가 치보하기를 ‘지난 5월 29일에 왜적 40여 명이 고을 경계의 양전리(陽全里)를 불의에 습격하여 복병장 이영수(李永壽) 등 3명과 소녀 2명을 사로잡아 즉시 돌아갔다.’ 하였습니다.…
-
도원수 권율이 부산포의 왜정을 치계하다.
도원수 권율(權慄)이 치계하기를,
“경상우병사 김응서(金應瑞)의 치보에 ‘10일은 일기가 온화했다. 저와 통제사·경상우수사가 일시에 전선 63척을 거느리고 해뜰 무렵에 장문포(長門浦)에서 배를 띄워 미시에 부산 앞바다에 정박하니 왜적이 창황히 수선떨며 …
-
고급사 행호군 권협이 중국의 구원군과 군량미 지원 시말을 치계하다.
고급사(告急使) 행호군 권협(權悏)이 치계하기를,
“신이 3월 2일 북경에 도착하였는데, 3일 이른 아침에 제독의 주사 이두(李杜)가 보낸 사람이 부사 정유미(程惟美)와 함께 와서 오게 된 까닭을 묻고 나서는, 가지고 온 자문과 주문을 먼저 보자고 성급…
-
조선의 형세와 방어 ․ 군량 등에 관한 병부의 자문.
병부가 보낸 자문은 다음과 같다.
“조선의 위기가 조석을 다투고 있으므로 일을 다시 지연시키기 어렵다 하여 방어에 관한 급한 일을 성명께 삼가 바로 개진해서, 일을 맡은 여러 관원을 엄히 신칙하여 속히 기회를 보아 착실히 거행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