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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함락된 진주성 싸움의 자세한 경과.
당초에 적추(賊酋)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제추의 군대를 합치면 30만이라고 하였는데 어떤 자는 7~8만 명이라고 하였다. 왜적이 수륙으로 함께 나아가 진주를 공격하려 할 때 총병(總兵) 유정(劉綎)은 유격(遊擊) 오유충(吳惟忠)과 함께 대구(大丘)에 있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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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원부원군 유성룡이 진주성 싸움의 패전 원인을 보고하다.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이 치계하였다.
“진주의 함락이 비록 강대한 적병 때문이기는 하지만 우리 쪽 대응의 잘못도 개탄스럽습니다. 신이 서울에 있을 적에 목사(牧使) 서예원(徐禮元)이 명군지대차사원(明軍支待差使員)으로 함창(咸昌)에 와서 있기에 즉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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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남별궁에 나아가 유성룡을 인견하고 중국 사신에 관한 일 등을 의논하다.
상이 남별궁에 나아가 막차에서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을 인견하였는데, 도승지 심희수(沈喜壽), 주서 남이신(南以信), 대교 김상준(金尙寯), 검열 박동선(朴東善)이 입시하였다. 유성룡이 나아가 아뢰기를,
“중국사신이 좌우를 물리치고 써서 보이기를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