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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수 조헌이 일본의 침략에 대비할 것을 아뢴 소장과 첩황②.
또 첩황(貼黃)이 있었는데 그 대략에,
“기밀스러운 일은 비밀히 하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말에 능란한 적사가 동평관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으니 신의 봉장이 또한 늦은 것입니다. 바라건대 신의 상소문을 머물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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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판관 김시민 등이 사천 ․ 고성 ․ 진해의 적을 무찔러 여러 고을을 수복하다.
진주판관(晋州判官) 김시민(金時敏)이 사천현감(泗川縣監) 정득열(鄭得悅) 등과 군사를 합하여 사천·고성(固城)·진해(鎭海)의 적을 무찌르니 적병이 점점 철수하여 도망하였으므로 김시민이 연로의 여러 고을을 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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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 김시민을 진주목사로 삼다.
판관 김시민(金時敏)을 발탁하여 진주목사(晋州牧使)로 삼았다. 김시민이 진주의 주민을 안정시키면서 출전하여 누차 승첩을 거뒀으므로 금산(金山) 이하에 머물며 주둔하던 적이 모두 도망하였다. 이에 김시민이 도로 진주에 주둔하면서 굳게 지킬 계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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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등지의 적이 군사를 합쳐 진주를 포위하다.
부산 등지에 주둔했던 적이 군사를 합쳐 대대적으로 진주를 포위하였다. 당초에 적이 유숭인(柳崇仁)의 군사를 패배시키고 여러 고을을 분탕질한 뒤 진주로 향하려 하였다. 이에 김성일(金誠一)이 호남에 구원을 청하자 의병장 최경회(崔慶會)·임계영(任啓英)이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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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이 의병장 곽재우․이달 등을 보내어 진주를 구원하도록 하다.
김성일(金誠一)이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이달(李達) 등을 보내어 진주를 구원하게 하고, 사잇길로 군기를 수송하게 하였는데, 목사 김시민(金時敏)이 적병을 크게 격파하여 진주가 포위에서 풀렸다. 당초 왜장이 군사 수만 명을 모두 동원하여 진주성을 포위하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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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진주를 함락시키자 김천일 ․ 최경회 등이 전사하다.
왜적이 진주를 함락시켰다.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 등이 전사하였다.
당시 진주에서 급변을 보고하니, 이여송(李如松)이 경성에서 열둔의 제장인 유정(劉綎)·오유충(吳惟忠)·낙상지(駱尙志) 등에게 전령하여 군사를 전진시켜 구원하게 하였으나, 제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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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의 공훈을 3등급으로 정하고 정왜의 공훈에 주청사도 넣을 것을 청하다.
빈청에서 원훈과 대신이 아뢰기를,
“신축년에 공훈을 결정할 때 호종(扈從)과 정왜(征倭)로 공신들을 나누어 두 가지로 했는데, 임인년 가을에 이르러 비로소 함께 녹훈하자는 의견이 있어 즉시 아뢰어 개정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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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 신이복이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고 군수 신초 등에게 포상할 것을 아뢰다.
장령 신이복(愼爾復)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고 군수 신 신초(辛礎)·승지 신 하계선(河繼先)·사인 조방(趙垹)은 위대한 공렬이 실로 충익공(忠翼公) 신 곽재우(郭再祐)와 더불어 같은 공으로 같은 지위에 있어야 하는데도, 유독 증시·증직의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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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남별궁에 나아가 유성룡을 인견하고 중국 사신에 관한 일 등을 의논하다.
상이 남별궁에 나아가 막차에서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을 인견하였는데, 도승지 심희수(沈喜壽), 주서 남이신(南以信), 대교 김상준(金尙寯), 검열 박동선(朴東善)이 입시하였다. 유성룡이 나아가 아뢰기를,
“중국사신이 좌우를 물리치고 써서 보이기를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