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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 등이 송응창이 심유격을 잡아오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보고하다.
예조판서 윤근수, 공조판서 한응인, 병조판서 이항복이 아뢰었다.
“신들이 장도사(張都司)를 찾아가 보았더니 말하기를 ‘경략이 매우 화를 내면서, 심유경(沈惟敬)이 두려워서 이 곳으로 피해 도망왔는데 유경과 그의 하인이나 혹은 가인(家人)이 소식을 누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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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수복 전투의 전모를 기록하다.
처음에 제독 이여송(李如松)이 군사 3만명을 거느리고 부총병 양원(楊元)을 중협대장으로, 부총병 이여백(李如栢)을 좌익대장으로, 부총병 장세작(張世爵)을 우익대장으로 삼고, 부총병 임자강(任自强)․조승훈(祖承勳)․손수렴(孫守廉)․사대수(査大受)와참장이여매(李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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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배로 의주의 군량과 마초를 운반할 일과 운반 책임자의 선발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었다.
“군량 운송하는 한 가지 일은 백성들의 힘이 이미 탈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처에 파견된 관원과 수령들 역시 십분 힘쓰지 않아서 큰일이 틀려지려고 하니 신들 또한 민망하고 염려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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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를 인견하고 개성의 군량, 경성 수복방법 등을 논의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평양으로부터 돌아오니 상이 인견하였다. 참찬관 심우승(沈友勝), 가주서 김흥국(金興國), 기사관 조유한(趙維韓)·신영(申泳)이 입시하였다. 윤두수가 아뢰기를,
“신이 평양에 들어가니 이여백(李如栢)이 마침 제독과 이야기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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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중화의 전사한 자의 가족에 대한 복호 등을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중화(中和) 한 읍은 한 사람도 적에게 붙은 자 없이 전사한 자가 수천에 이른다고 합니다. 위령제는 벌써 거행하였지만 본읍을 2년 기한으로 복호시켜주고 모든 요역을 일체 견감해 주며, 전사한 자의 처자들에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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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략에게 왜노에게 침탈당한 도와 침범당하지 않는 도에 대해 회자하다.
경략이 이자하였는데 대략에,
“본국의 팔도 중에 어느 도 어느 읍은 모두 왜노가 점거하였고, 어느 도는 침범 당하였으며, 어느 도는 아직 침범 받지 않았고, 어느 곳 어느 도는 전혀 지경에 들어오지 않았는가 하는 사실을 세세히 갖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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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의 가자, 중화군의 승격 등을 상의하라고 전교하다.
상이 정원에 전교하기를,
“나는 지금 이 도를 떠나는데 감사 이원익(李元翼)은 애쓴 공이 있으니 가자함이 어떻겠는가? 전일 중화군(中和郡)의 호를 승격하자고 아뢰었었는데, 그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하므로 허락하지 않았거니와 감사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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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수 김명원이 순찰사 이원익 등으로 평양을 공격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다.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이 순찰사 이원익(李元翼)과 순변사 이빈(李薲)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평양으로 진군하여 공격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당시 이원익 등은 순안에 주둔하여 천여 명의 군사를 불러모았는데 정예 군사가 제법 많았다. 방어사 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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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 이여송이 평양에 진군하여 싸워 이긴 뒤 승첩을 상주하게 하다.
다음날【6일】진군하여 평양에 접근하였다. 제독이 대군을 서둘러 행군시키자 도원수도 제진의 군사를 합쳐 거느리고 그 뒤를 따랐다. 군사를 나누어 에워싸니 적은 성에 올라가 굳게 지키면서 모란봉(牧丹峯)을 거점으로 높은 위치에서 총을 쏘아댔다. 제독이 진정병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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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국청에서 고언백과 박명현 등이 임진왜란 때 평양 등지에서 왜적과 싸웠다고 공초하다.
추국청에서 상인 고언백(高彦伯)과 연창군(延昌君) 박명현(朴名賢) 등에게 묻기를,
“너희들은 임해의 집을 출입하면서 교결하여 심복이 되어 가장 친밀하게 지냈고 은밀히 이심을 품고 있었으니, 종적이 의심스럽다. 사실대로 직초하라.”
하니, 고언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