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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대가가 전진 할 곳을 결정하라고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대가가 전진하는 일은 반드시 예정하여 통유한 뒤에야 여러 가지 공궤를 미리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황해도감사가 치계 하여 품하였고 또 재령(載寧)으로 써서 말하였는데, 본군 읍내는 인가가 적고 풍토가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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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잡이 비변사 당상을 인견하여 국사를 논의하고 서무에 관심을 두라고 건의하다.
정오에 상이 별전에 나아가 ≪주역≫을 강하였다. 강이 끝나자 특진관 신잡(申磼) 이 아뢰기를,
“국사의 간위(艱危)가 하루하루 심해 가는데 민심은 태만해져서 점점 전과 같지 않습니다. 지금 일기가 조금 따뜻해지니 옥체가 강녕하시거든 비변사 당상을 인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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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의 고을을 순찰하는 일로 떠나는 경기등 사도 도체찰사 유성룡을 인견하다.
경기등사도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이 경기의 고을을 순찰하는 일로 배사하니, 상이 인견을 명하였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이르기를,
“경이 순심(巡審)을 가는데 순심하고는 즉시 돌아오는가?”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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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양포정의 차관인 지휘 영국윤을 인견하다.
미시에 상이 시어소(時御所) 별전에 거둥하여 양포정(楊布政)의 차관인 지휘(指揮) 영국윤(寗國胤)을 인견하였다. 상이 영국윤에게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일로 인하여 수고로이 먼 곳까지 왔으니 매우 감사하오. 전일 양대인(楊大人)에게 보낸 회자에, 양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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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정혹이 서울 근처의 유랑민에 대한 생활 대책을 마련하도록 아뢰다.
지평 정혹(鄭豰) 등이 와서 아뢰기를,
“하삼도를 본래부터 부고라고 일컫는 것은 비단 백성이 조밀하게 살고 전토가 비옥해서일 뿐 아니라, 거가와 대족이 고을마다 살고 있지 않는 곳이 없고 인재가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임진년 변란에는 의병을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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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한명련의 충성과 용기에 대해 아뢰다.
6456. 비변사가 한명련의 충성과 용기에 대해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한명련(韓明璉)이【해서의 천민이었는데 난리가 일어나자 입신하여 전공으로 2품의 지위에 이르렀다.】북방의 사변을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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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에 있던 조헌이 일본의 서계에 분개하여 침략에 대비할 것을 아뢴 소장과 첩황 ①.
전 교수 조헌(趙憲)이 소장을 올렸으나 답이 없었다. 조헌이 일본의 서계가 패역스럽고 왜사도 함께 나왔다는 말을 듣고서 옥천(沃川)에서 백의로 걸어와서 예궐하여 소장을 올렸는데 그 내용에,
“신은 생각건대, 선비는 자신의 말의 쓰여지지 않으면 말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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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건 사람 허의후가 왜국이 명을 칠 것이라는 소식을 절성에 투서하다.
허의후(許儀後)는 복건(福建) 사람이다. 포로가 되어 왜국 살마주(薩摩州)에 끌려 갔다가 수장의 총애를 받고 국중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때 그는 관백이 장차 입구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와 친분이 있는 주균왕(朱均旺)을 은밀히 보내어 절성(浙省)에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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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가 서울 환도, 경략에 대한 접대 문제를 아뢰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아뢰기를,
“지금의 사세는 오직 진주하시는 한 가지 일에 있을 뿐이니 하루가 급합니다. 치융(治戎)으로 말하더라도 이곳에서는 영외가 아득히 멀고, 수릉의 일로 말하더라도 이곳에서는 명령을 통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유민이 먹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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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세자를 내려 보낼 수 없음을 경략 진영에 설명했다고 보고하다.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윤근수(尹根壽)가 치계하였다.【이 달 21일, 경략소(經略所)에서 한 것이다.】
“신들은 오늘 아침에 출급된 패문을 보고서 즉시 장기고(張旗鼓)에게 ‘노야(老爺)가 우리나라의 일을 진념하여 세자로 하여금 배신 몇 사람을 거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