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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판관 김시민 등이 사천 ․ 고성 ․ 진해의 적을 무찔러 여러 고을을 수복하다.
진주판관(晋州判官) 김시민(金時敏)이 사천현감(泗川縣監) 정득열(鄭得悅) 등과 군사를 합하여 사천·고성(固城)·진해(鎭海)의 적을 무찌르니 적병이 점점 철수하여 도망하였으므로 김시민이 연로의 여러 고을을 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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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도 의병장 유종개가 적에 패하여 전사하다.
경상좌도 의병장 유종개(柳宗介)가 적을 만나 패하여 전사하였다.
이에 앞서 경상좌도의 산협(山峽)과 해빈의 10여 고을은 적로와의 거리가 조금 멀어서 사족(士族)들은 험한 지역을 의지하여 병란을 피하고 여리에서는 의구하여 모두 ‘만약 군사를 모으면 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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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찰사 윤두수가 거제의 왜적을 이기지 못하자 양사가 탄핵하여 파직시키다.
체찰사 윤두수(尹斗壽)가 장수를 보내 거제(巨濟)에 주둔한 왜적을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양사가 윤두수를 탄핵하여 파직시켰다.
당시 왜적은 해상의 8읍을 점거한 채 깊이 침입하지 않고 화평하려는 의사만 비치고 있었다. 두수는 군사가 피로하고 군량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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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수군을 습격하여 깨뜨리니 원균과 이억기, 최호가 전사하다.
적이 수군을 습격하여 깨뜨렸다. 통제사 원균(元均)이 패하여 죽고 전라수사 이억기(李億祺), 충청수사 최호(崔湖) 등이 죽었으며, 경상우수사 배설(裵楔)은 도망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당초 원균이 한산도에 도착하여 이순신(李舜臣)이 세워 놓은 규약을 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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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황이징 등이 일본일본의 장군 청정등이라 한 것은 스스로 왕을 칭한 것이라고 아뢰다.
유학 황이징(黃爾徵)·황부(黃裒)·홍명일(洪命一) 등이 상소하기를,
“신의 고조인 신 황정욱(黃廷彧)은 두 조정을 차례로 섬기면서 영광과 총애가 견줄 데 없어 지위는 높은 벼슬에 오르고 이름은 훈적에 실렸으나 지하에서 억울한 마음을 품고 눈을 감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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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인이 가덕포는 대마도와 매우 가까운 곳이므로 변경의 아주 긴요한 곳이라고 아뢰다.
순검사 임광(任絖)이 가덕(加德)과 천성(天城)을 구진으로 옮겨 설치하기를 계청하였는데, 묘당에서 통제사와 도신으로 하여금 형세를 헤아려서 아뢰게 하라고 청하였다. 통제사 신경인(申景寅)이 치계하기를,
“이른바 가덕포는 좌도의 다대포와 우도의 거제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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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임란 때 의병을 일으킨 최균과 최강을 군공으로 증직할 것을 청하다.
예조에서 여러 도의 유생들이 올린 글로 인하여 도의 조사를 거친 뒤에, …… 황간(黃澗)의 고 현령 남수일(南守一), 고성(固城)의 고 동지 최균(崔均)과 그의 아우 고 부총관(副摠管) 최강(崔堈)에 대해서는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킨 것과 갑자년에 세운 군공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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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에서 왜료를 거두어 들이는데 웅천을 도회관으로 삼자고 아뢰다.
호조에서 아뢰기를,
“공안에는 왜료가 ‘어느 고을에서 몇 석’ 이라고만 적혀 있고 거두어들이는 도회관(都會官)이 없으므로, 그 고을에서 스스로 거두었다가 도로 백성에게 주어 포소에 실어 가서 바치게 하니, 백성에게 폐해가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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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선위사 김자정이 견문 내용을 치계하다.
대마도선위사(對馬島宣慰使) 김자정(金自貞)이 보고 들은 사건을 치계한 것은 이러하였다.
“5월 초2일 평명(平明)에 신이 왜중추(倭中樞) 평무속(平茂續) · 첨지(僉知) 피고여문(皮古汝文) · 호군(護軍) 원무기(源茂崎) · 특송(特送) 조국차(助國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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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의 역을 더는 방법, 하삼도의 축성, 경상도의 군수 확보 등을 의논하다.
일찍이 정승을 지낸 이와 의정부·육조 및 일찍이 경상도 감사와 절도사를 지낸 이와, 충훈부 당상 1품에게 명하여 궐정에 모여 일을 의논하게 하였는데, 그 의논할 일은,
“1. 선군의 호수만이 홀로 원패(圓牌)를 받고 입번하여 한 달…